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고찰
[1505] 공산주의의 세 번째 원수는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⑼
사철소나무
2025. 2. 3. 12:00
[종북 세력들의 4대 원수]
이 글은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김홍도 목사의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종북, 반미, 좌파, 일명 주사파 사람들의 사대(四大) 원수 기독교, 미국, 이승만, 재벌이 있는데, 그들이 죽었다가 깨어도 용납할 수 없는 원수들입니다.
[1505] 3. 공산주의의 세 번째 원수는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⑼
1) 두 번째, 종북, 좌파들의 원수는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이승만은 그 유창한 영어 실력과 외교술로 미군을 불러들였고, 그의 해박한 지식과 고도의 외교술로 미국 대통령과 장군들을 호령하며 갖고 놀다시피 했습니다. 그 한 예로 인민군 포로 중에“반공 포로”까지 북송하겠다고 하는 것을, 이승만 대통령은 그들을 총살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반공 포로들을 석방한 것 등이, 이승만의 고도의 정치력과 배짱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공산당의 남침을 격퇴하여 자유를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국부로 불세출의 영웅이건만 흡혈귀처럼 미워하는 것입니다.
① 이승만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신념으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학에서 학사를, 하버드(Harvard)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Princeton)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단 5년 동안에 삼대(三大)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다 마친 위대한 실력가입니다.
② 이승만은 대쪽 같은 자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 살신성인하는 애국충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국제회의에서 일본의 잔악함과 침략 근성을 폭로하였습니다.
③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숭상한 지도자였고, 신탁통치와 남북 합작론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세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10대 경제 대국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권을 유린하고 살인 만행을 일삼는 공산정권 하에서 굶어 죽어가며,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남(雩南) 이승만은 멸사봉공, 근검절약하는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부정축재 한 일도 없어서, 하와이(Hawaii)에 망명해 있으면서, 서울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서 식생활까지도 절약하며 단 몇 불이라도 아껴 썼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친정에서 치아 치료받으라고 3,000불 받은 돈을, 한국에 와서 달러를 써야 한다고 가슴에 품고 왔다고 합니다. 또 뚫어진 양말도 기워 신었다고 합니다.
④ 그는 “백성을 사랑함이 나라의 근본(根本)”이란 통치 철학을 가진 분입니다. 그는 관1호 대통령 승용차를 극구 마다하여, 백성들이 걸어 다니는 노(老) 대통령 앞에 엎드려 절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4.19 혁명이 일어난 까닭을 알게 된 우남은 “백성이 원하면 하야 해야지”하며 경무대를 떠났습니다.
3,15 부정선거는“인의 장막”으로 노 대통령의 총명을 흐리게 하고 장기 집권을 획책한 자유당 강경파 무리의 소행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선거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해공 신익희 선생도 유세 도중 기차간에서 고혈압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늘이 낸 대통령”이므로 4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할 때, 이승만을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남 이승만은 1960년 5월 하와이로 기약 없는 망명의 길을 떠날 때, 허정 수반에게 다음과 같은 여섯 마디의 말을 남겼습니다. ①자유민주주의를 지켜라. ②반공 태세를 굳게 하라. ③한미 우호 동맹을 굳게 하라. ④일본을 믿지 말라. 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⑥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여섯 가지 유언 같은 말이었습니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Hawaii Honolulu)에는“승만리 로드"(Shyng-Man Rhee Road)가 있고, “이승만 기념일”(Shyng-Man Rhee Day)이 있고, “이승만 기념교회”가 있으며, 그의 모교 프린스턴(Princeton) 대학에는 “이승만 기념 홀”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념관 하나도 없습니다. (제재형 글 참고)
종북, 반미, 좌파들이 백범 김구 선생을 하늘같이 높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을 흡혈귀처럼 여기며 미워하는 중요한 이유는, 6,25 전쟁 발발 직전에 김구 선생은 김일성을 만나고 와서 6,25 전쟁 소식도 미리 알고, 공산화 통일을 돕기로 약속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구 선생은 그때만 해도 이승만처럼 공산주의가 얼마나 잔악한 집단인지 모르고, 오직 조국의 분단만은 막으려는 일념에서 동의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김구 선생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자의든 타의든, 한국은 공산화 통일이 되었을 것이고, 통일 후에는 박헌영처럼 사형당했을 것입니다.
이승만은 죽을 때까지 4.19를 폄하한 일이 없습니다. 우남이 하야하고 이화장에 와 있을 때 대만의 장개석 총통으로부터 위로의 편지가 왔는데, 우남은 답신으로“정의를 사랑하는 우리 청년 학도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북, 좌파들은 김구 선생을 영웅으로 받들고 이승만은 장기 독재자로 매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