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글

[1112] 나의 아버지 故 소재철 장로님과 박갑순 권사님을 추모하는 글

사철소나무 2023. 12. 23. 10:26

고 소재철 장로님 근형

□ 나의 아버지 소재철 장로님과 박갑순 권사님을 추모하는 글

우리 아버지 소재철 장로님은 노환으로 서울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016년 5월 7일 91세 향년으로,  우리 어머니 박갑순 권사님은 2023년8월9일 향년 94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소천하셨습니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코로나 창궐로 인하여 찜질방체험을 못하다가 오랜만에 찜질방에 갖습니다.

마침 온탕 앞을 지나가는데, 온탕 안에 어떤 분의 옆모습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닮은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순간, 깜짝 놀라 나의 눈을 의심하며 옆으로 돌아가 보니 다른 분이었습니다. 가끔씩 천국에 가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나곤 했는데 오늘은 생전에 기도해주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추모의 글을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함자는 소(字) 재(字) 철(字)입니다.

1926년도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어려운 시절에 유교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6.25 동란이 발발하자 육군에 징집되어 전투에 참전하셨습니다.

함께 입대한 동료들은 많이 전사를 하였는데, 다행히  우리 아버지는 포병으로 보직이 되어 전차를 타고 이동하여서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보전하였다고 합니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과 논산훈련소 교관으로 군복무를 하시다가 군복무 중에 폐병을 얻어 국군병원에서 치료 중에 부사관으로 전역을 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전역하신 후에도 군(軍)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사회인이 되셨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과 담배를 즐기셨습니다. 후에 국가유공자로 호국영웅기장증을 수여 받았지만, 당시엔 날마다 술에 취해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셨습니다. 전역을 하신 후에도 반공정신이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군에 대한 향수에 젖어 매일 술에 거나하게 취해  살았습니다. 마을 회관 앞을 지나갈 때는 [나는 대한민국 육군 특무상사 000다!] 라고 외치셨고, 집에 들어오면 술이 깰 때까지 주사로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기억에는 항상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였습니다. 이에 나는 성인이 되면 절대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우리 유년시기는 암울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항상 지켜주었습니다. 우리 집 바로 앞쪽에 작은 교회가 생겼습니다. 우리 누나는 어린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고향에 있는 장로교회에 나갔습니다.

교회는 어린 우리를 환영해주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마음이 참 평안했습니다. 우리 형제는 항상 교회 나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성장하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녔던 교회는 전도사님이 담임목회자이었고 작은 농촌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준 요람이요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희망을 품고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어릴 때 꿈은 [전도사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도 장래 희망을 전도사로 썼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안 드시면 말 수가 없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호인이셨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는 않다니셨지만, 교회에 다니는 아들들에게 헌금을 바치라고 동전을 챙겨 준 일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아버지가 집에서 안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가 철이 들었는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혈혈단신으로 무작정 서울 로 올라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의지할 곳 없는 객지에서 억척스럽게 구진 근로를 하시면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신 분입니다. 그런 우리 아버지가 하늘의 부름 받고 하늘나라에 돌아가신 지 어언 8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인자하신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고 그립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혈기왕성하여 항상 강직한 분이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인 내가 신학교를 다닐 때, 직장에 안다니고 신학교에 다닌다고  못 마땅 해  하셨습니다. [조상들에게 제사도 안 차려줄 자식이라]고 한 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 것도 불편해 하셨습니다. 그래 나는 자동적으로 교회당에서 철야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아버지가 50세 되던 해에 한풀이 꺾였습니다. 아버지의 작은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객지인 부산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함께 간 친구가 사고로 쓰러지자 병원에 후송하기 위해 친구를 등에 업고 부산시 하단동 에덴공원 대로에서 택시를 잡으려다가, 빗 길에 과속한 차량에 치어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다음부터 아버지는 자식을 잃는 큰 충격 속에 마음이 약해지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였습니다. 죽은 아들을 위해 아비로서 어떻게 해줄 것이 없다고 눈물을 훔치고 마음이 약해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시면서 [소주]와 [북어]와 [과자봉지]를 사서  우리집 앞 구석진 골목에서 불을 지피고 아들 영혼을 달래는 [거리제]를  홀로 지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때 큰 아들인 나는 신학교에 다니며 서울에서 개척교회 창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 신학생이었지만,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잠시 방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꽃을 펴보지도 못한 어린 동생을 먼저 불러가신 걸까?' 이해가 안되고 신앙에 회의가 생겨서, 술에 취해서 하나님께 반문하였습니다.

잠시나마 불신앙의 자리에서 방황을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부족한데도 참 좋으신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하고 다시 신앙을 회복시켜 소명감과 사명감을 주셨습니다.

그래 목회자로서 교회개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는 저를 도와 예배당을 꾸미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교회가 개척되어 창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진 교회창립기념 부흥성회에서 우리 아버지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 예배에 참석하시다가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참된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아버지에게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술과 담배를 안 들면 못 견딘 분이었습니다. 그런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은혜를 받은 그날로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은 기본이고, 모든 공 예배와 기도생활에 모범적으로 헌신하셨습니다.

우리교회에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셨고 존경을 받으셨고, 그러다가 1989년도에 장로님으로 장립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기도응답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이 애타게 후원기도를 하였는데 우리 기도가 응답되고 구원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주님의 종이 되신 장로님은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셨고 교회 생활에 모범이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소재철 장로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에 가시기 전까지 주일성수, 십일조, 매일 새벽기도를 성실

하게 하셨습니다.  항상 교회 주변을 맡아 쓸고 닥고, 일찍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교회와 교인들과 자녀들과 손주들 이름을 불러가며 후원기도를 하셨습니다.

특히 아들 목사가 출타하여 늦게 귀가할 때는, 늦은 밤까지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아들이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며 안심하셨습니다.

 

지금은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청아하게 노래하며 복락을 누리고 계시지만, 은혜를 입은 자식으로서  생전에 기도해 주신 아버지  장로님이 많이 그립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믿음의 조상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추수할 때 깨알 같이 많고, 바닷가에  모래알 처럼 많고 많은 인생 중에 우리 가문을 선택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구속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험난한 인생 길에서 아버지를 인도해주셔서 무사하게 천국에 입국하게 해 주신  은혜를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천국에서 영복(榮福)을 누리는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장로님과 어머니 권사님을 우리 믿음의 조상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바라기는 부모님의 후손들이 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기를 소원하고 소원합니다.

 

장차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부활 영화의 몸을 입습니다. 영원한 영생의 천국에서 영화를 누리며 영생합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의 후손들이 한 명도 빠짐 없이 기쁨으로 상봉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아버지 소재철 장로님과 나의 어머니 박갑순 권사님을 추모하면서 모든 영광을 성 삼위 하나님께 돌립니다. 【추모사 : 2023년 12월 23일 사철소나무, 아들  씀]

신구약성경을 필사하신 박갑순 권사님.